03화. 검은 그림자

2014. 2. 8. 08:51지구별1박2일/🚴🏻‍♂️ 세계일주이야기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헤드라이트 빛 한 줄기가 정확하게 날 향하고 있었다.

눈부신 빛 속의 검은 그림자는 이젠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어느새 나의 손은 허리춤에 끼워 놓은 3단봉을 꽉 웅켜쥐고 있었다.



Part 1. 눈 먼 여행자


입국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상인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저씨들마다 등에 한짐 가득씩 들고 줄지어 서 있었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내 자전거에 실려 있는 짐 쯤은 아이들 장난감 마냥 느껴지기까지 했다.

큰 짐을 어깨나 머리에 지거나 이고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농담까지 즐기시는 아저씨들을 보니 꼭 초인이라도 보는 것만 같았다.



공산당 제복을 입은 예쁜 아가씨가 간단하게 간단히 여권을 체크하는 것만으로 입국 심사는 간소하게 끝났다.

하지만 세관물품신고를 위해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서 시간이 적잖이 걸릴것만 같았다.

모든 가방의 물품을 다 뒤집어 엎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미 앞에 줄을 선 많은 아저씨분들께서 짐을 풀어 헤치고 다시 싸매기를 반복하고 계셨다.

눈치껏 보아하니 나도 짐을 다 풀어 헤쳐야 할 것아, 줄지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검사를 하기 전에  공산당 제복을 입은 나이가 지긋하고 건장한 풍채를 가진 아저씨 한 분이 내게로 다가 오셨다.

딱 보아도 높은 직책에 있는 분이라는게 느껴졌다.

왠지 살짝 긴장이 되었다.

잘못한게 없는데도, 이렇게 제복을 입은 분들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움츠려든다.


"%^$#$%#^$#%@"


이해할 수 없는 중국어 때문에 우선은 살짝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영어로라도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니하오! 음.. 음.. 캔 유 스픽 잉글리쉬?”


아저씨는 머쩍은 듯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데, 나 역시 그 웃는 순간을 잘 파고 들어 더 친근하게 다가섰다.

몇 마디 나누어보고는 내가 중국어를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셨는지,

웃음과 함께 손짓으로 세관 통과대 옆쪽에 있는 지름길로 그냥 통과하라고 알려주셨다.

정말 그냥 지나가도 될지 재차 확인 해보았지만 더 환하게 웃어주시며 역시 같은 반응을 보여주셨다.


중국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한번에 깨져버리는 순간이이기도 했다.

막연하게나마 상상했던 공산국가, 중국의 첫인상이 적어도 이런 환한 미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령 짐을 일일이 다 풀어헤치고 검사를 하였다 한들 이렇게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더라면 역시나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보더(출입국사무소)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한 나라의 이미지 자체를 뒤흔들어 버린다.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는 한 나라의 첫인상이 바로 이곳, 보더에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게 중국 대한 첫 인상은 바로 여기, 보더에서 친절함을 보여준 아저씨의 미소였다.

왠지 중국의 여행이 행복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간소한 절차를 마치고 국경사무소 문 앞을 통과하였을 때 코끝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은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이 실려있었다.

그리고 짐 체결을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근데 오늘은 어디에서 자려고 그래요?”


페리 안에서 만났던 아저씨였다.


“글쎄요. 아직 날이 저무려면 시간이 남았으니 달리면서 캠핑할 곳을 찾아봐야죠.”

“위험할 텐데… 늦었으니 오늘은 그냥 우리랑 같이 호텔에서 머물고 내일 출발하는 게 어때요?”


아저씨는 배에서 누님이라고 부르던 후덕한 외모의 아주머니와 함께 있었다.

어제 배 안에서 만나뵙고 유리병에 젓갈을 한 가득 담아 주셨던 마음씨 고마운 아주머니였다.


"방 값은 이미 내가 지불해 놨으니까, 같이 자고 가요. 중국은 위험한 일이 많아요.”


이미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터라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너무 늦게 배가 도착하는 바람에 오늘은 얼마 달리지 못하고 캠핑을 해야 할 것이 뻔했다.

그럴바에야 오늘은 하루 편히 쉬고 내일부터 달리는 것이 더 괜찮을 것 같았다.


"아..."


대답을 하려는 도중에 의심이 덜컥 일었다.


'왜? 겨우 배에서 한번 얼굴 익힌 사이일 뿐인데, 왜 내게 이렇게 친절하지?'


.


‘장기 조심해라’

‘약 먹이고 배에 팔아넘긴다더라’,

‘팔, 다리 자르고 오뚝이 만들어서 서커스단에 팔아넘긴다더라’


하필이면 이런 생각들이 지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고 있었다.

중국의 흉측한 소문을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타국에서 혼자라는 나의 현상황이 일으킨 방어본능 때문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이상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의심하는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뭐 괜찮을거에요. 무슨일이야 있겠어요?!!”

“하지만 텐트를 치는건 위험할텐데.. 할 수 있겠어요?”

“네~! 뭐. 앞으로 계속 이렇게 여행을 해야 하는데요 뭐!"  ^0^


대수롭지 않은 것마냥 대답했다.






“그래도 조심해요. 그리고 이왕이면 인적 드문 곳에서는 밤에 더 조심하고, 중국은 한국과 달라서 많이 위험해!” 

“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자 더는 잡기 힘들었다고 판단을 했는지 여행 조심히 하라며 당부와 함께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런데 페달을 밟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아주머니께서 이야기를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혹시 중국 돈은 가지고 있어?”


‘아차! 깜빡했다!!’


환전을 깜빡했다.

대책없이 여행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도무지 무슨 깡이이란 말인가?

그렇게 환전도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잠시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다.





“한국 돈으로 얼마를 가지고 있어? 없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거로 환전해 주께!”


아주머니는 이미 내가 돈도 준비하지 않고 왔다는 걸 눈치채신것 같았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더니 중국 돈을 꺼내셨다.


“어차피 우리는 중국-한국을 왔다갔다 해야 하니까 한국돈이 또 필요해!”


지갑을 들춰보니 한국에 들어오기전에 환전하려고 넣어 두었던 20만원 정도가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의심이 들었다.


‘왜 이렇게 친절하거야? 중국에 위조화폐가 많다던데 혹시 가짜 아냐?’ 







내 여행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들 중에 한 순간이었다.

제발 환전을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혼자 소설을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행자로서 그때의 내 모습을 단 한마디로 줄이자면 [쓰레기]였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보여준 순수한 마음의 호의를 이런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1위안에 200원 정도로 셈을 쳐서 모두 환전하였다.

돈을 바꿔주시고 나서도 걱정과 아쉬움에 다시 한번 중엉거렸다.


“이왕이면 안전하게 하루 자고 가지”


하지만 나의 옹졸한 마음은 아직 그런 호의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고마움도 보지 못하는 난 아직 눈 먼 여행자 따위일 뿐이었다.







Part 2. 불길한 기운


중국 땅에서의 첫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페달을 밟는 한발 한발에 긴장감이 함께 실렸지만 마음만큼은 너무나 상쾌했다.



‘근데 어느쪽 길이지?’ 


내가 준비해 온 유일한 지도는 세계지도 하나가 전부였다.

정말 옆동네에 가는 것마냥 막무가내 정신으로 출발을 했다는 또다른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여행의 첫날, 첫 페달링의 순간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지도가 없으니 낯선땅에서 어디로 달려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냥 길위에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우선은 큰길이 보이는대로 대충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자신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달리는 방향이 GPS상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면 생각없이 무작정 달렸다.

어차피 길이야 어딘가에서 합쳐지지 않겠냐는 심산에서였다.

그런데 그런 생각과는 달리, 달린지 채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GPS가 있다지만 그 안에 포함된 지도는 큰 국도정도만 표시된 정도였고, 작은 골목같은 것까지 표현하고 있지는 않았다.

GPS 화면으로만 보자면 당연히 난 길위에 없었다.

더군다나 중국에서의 첫 여행이라 길이 어떤식으로 형성 되어 있는지 아직까지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격자식의 도로일 거라고 생각을 하고 달리면 어떻게든 큰 도로가 나오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달렸지만

점점 막다른 길로 빠져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포장도로까지 나타나면서 길을 찾는 것은 커녕, 달리는 것 조차 힘들어졌다.

그리고 완벽히 막다른 길에 부딪히고 말았다.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만큼 지루한게 없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 실수였다.

샛길로 빠질때마다 비포장의 도로에 막다른 길만 계속 나타났다.




나중에 알은 사실이지만 내가 달리고 있던 길은 도로 공사를 위해 포장을 준비하던 길이었다.

당연히 길이 연결되어 있을리 만무한 도로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리 없었던 난 결국 돌고 돌아 처음의 길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헤매다 보니 이미 해는 늬엿늬엿 떨어져가고 있었고 마음은 점점 급해져 갔다.

 

'아! 이제 어떡하지?'





그 때 문득 싯포스트에 넣어 둔 3단봉이 생각이 났다.


낯선 장소에서 어둠이 몰려온다는 건 이와 같은 두려움을 뜻하는 일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갑자기 배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해 주신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위험한 곳이 많으니까, 특별히 어두울 땐 더 조심해야 해!”


아저씨의 제의를 거절한 게 그제서야 너무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래란 모를 일 투성이다.

지금의 불행이 내일의 무엇과 연결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는 말이다.




[스스로를 믿어라. 니가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너져가는 마음을 그렇게 다시 붙잡았다. 

 

우선은 싯포스트 조임쇠를 풀고 3단봉을 꺼내서 급하게 허리춤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다시 안장을 끼워넣고 조임쇠를 잡궜다.

“딸깍, 딸깍, 딸깍, ...”


이건 또 뭔 일이야!

다시 한 번 불길한 기운이 덮쳤다.

싯-포스트(자전거 안장)조임쇠를 조으려고 했을때 나사가 헛돌기 시작하더니 나사산이 완전히 뭉개져버린 것이다.

  

“이런 제길!” 



어느덧 저녁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임기응변으로라도 안장을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어두워진 낯선 곳에서, 그것도 이런 시골에서 자전거 수리점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어쩔수 없이 안장을 고정하지 않은 채 자전거를 한 번 타 보았다.

하지만 자전거의 중량과 함께 너무 낮은 안장 때문에 중심을 잃고 자꾸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다.

도저히 이렇게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자전거와 씨름하는 사이 어렴풋하게 보이던 붉은 노을, 작은 조각마저도 어둠이 모두 삼켜버렸다.

마음은 더 급해져만 갔다. 심장소리는 큰 북을 두두리는 소리마냥 크게 들려왔고, 머리속은 혼잡했다.

이 넓은 허허벌판에서 텐트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둠 속에서 방법을 찾기 위해 가방 속에서 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그 때였다.


“부릉~부릉~!!”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헤드라이트 빛 한 줄기가 정확하게 날 향하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손을 올려 불 빛을 막고 앞의 상황을 분간해보려 했지만, 어둠속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소리라도 들리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토바이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이었다.


빛은 점점 날 향해 다가왔다.

점점 커지던 불빛은 이내 몇십보 앞으로 다가서 있었다.

눈부신 빛 속의 검은 그림자는 이젠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다고오고 있었다.


“!!!”


알지 못할 불안한 기운이 온 몸을 덮쳐왔다.

어느새 나의 손은 허리춤에 끼워 놓은 3단봉을 꽉 웅켜쥐고 있었다.

두 손에는 식은땀 맺혀 있었다.




(4호에서 계속...)


** 3화에서는 사진데이터 분실로 이야기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진들로 대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