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내방이 어디에요?

2014. 2. 7. 18:09지구별1박2일/🚴🏻‍♂️ 세계일주이야기




2화. 내방이 어디에요?



배에 올라타자마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리셉션에서 연속해서 방을 잘못 배정해 준 탓이었다.

그렇잖아도 짐이 무거워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다보니 힘들었는데, 방배정까지 제대로 되지 않아 살짝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여행의 첫 단추를 화를 내며 끼우기는 싫었다.






자전거 짐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아님 한 시간 동안의 실랑이 때문에 미안해서였을까?

4인실 표를 끊었는데, 배정해 준 방은 2인실 객실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도 없으니 혼자 사용하면 된다고 하였다.

좀전의 불쾌한 기분이 살짝 누그러졌다. 

안내해 준 직원에게 살짝 눈웃음으로 보답했다. 우선은 짐을 옮기느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져서 샤워를 먼저 해야 했다.

샤워실은 객실내에 함께 붙어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도 나왔다.

언제 또 핫샤워를 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었으므로 마지막인 듯 천천히 샤워를 즐겼다.


샤워를 마친 후 갑판을 좀 두리번거리다 보니 벌써 허기가 느껴졌다.

'밥은 어디서 먹지?’'

때마침 저녁 식사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마련해 놓았으니 식사를 원하시는 분들은 한국 식당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배꼽시간은 여전히 건재한 편이었다.

한국식 카레 덮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넉넉한 양에 맛도 제법 좋았다. 가격도 3,000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여기 기웃 저기기웃거리며 객실로 돌아왔다.

짐 정리가 좀 필요했다.

가방을 다 뒤집어 엎었다. 생각외로 약을 너무 많이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군에서 무릎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 

야간 천리행군 중에 낭떠러지로 한번 굴렀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쯤에 그랬던 것같다.

군대에 있는 동안 그게 큰 부상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아픈날이 불규칙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1년 가깝게 아픈 무릎을 이끌고 군생활을 계속했다.

그리고 제대 후 사회에서 수술을 받으려 했을 때는 이미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판단이 떨어진 뒤였다.

이 때문에 신경이 쓰여 여행을 떠나기 3개월 전 쯤부터 무릎 물리치료를 좀 받기 시작했다.

그제야 몸 건강을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었다.

“절대 불가능해요!”


여행 계획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절대 그런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더군다나 그냥 여행도 아니고 자전거로 여행을 하겠다니 고개를 절래 흔드시더니


“지금 떠나서도 안 되지만, 떠난다 한들 금방 돌아오게 될 거에요” 라며 당부해주셨다.


걱정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덕분에 꽤나 많은 약을 보험용으로 들고 나오게 되었다.

우선은 무리를 최소한으로 하며 여행을 해야 겠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짐 정리가 대략 끝나갈 쯤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다시 누구랑 같이 쓰게 되는 건가?’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앞에는 낮선 아저씨 한분이 엉거주춤 문앞에 서 계셨다.


“저~ 여기 내 방인데 물건 몇 개만 꺼내가도 될까요?”

북한 억양의 사투리로 보아 조선족 아저씨인 듯했다.


‘응? 내 방?’



"저 아저씨 여긴 저 혼자 쓰기로 되어있는데요."

"아 그게 아니고 난 다른 방 쓰는데 냉장고가 여기에 있어서 내 음식들 몇개만 가지고 가면 돼요."

무슨말인지 더 궁금해졌다.


“우선은 들어오세요.”


내용인 즉슨 아저씨는 매일 같이 이 배를 타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짐을 옮기는 일을 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보따리상인’같은 그런 일을 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이 방에 음식, 옷이며 간단한 가재도구 등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보관해 놓는다고 하셨다.

왠지 방을 뺏은 듯한 느낌에 미안해졌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챙기시던 아저씨는 머쓱해하는 날 보셨는지


“좀 이따 저녁에 맥주 한 잔 같이 해요. 이따 오게요" 라고 하시면서 고구마 같은 것을 하나 던져주고 가셨다.

사실은 고구마가 아닌 생전 처음보는 붉은색의 무였다.

아저씨께서는 먹고 싶은게 있음 냉장고 안에 얼마든지 꺼내 먹으라며 인심을 후하게 남기시 말도 더했다.


낮에 갑판 위에서 잠깐 바닷바람을 쐰 탓인지 몸이 으슬으슬하며 감기기운이 올라오는 듯 했다.

출발하기도 전에 병이라도 날까봐 감기약 한 알을 얼른 삼켰다.

그리고 채 얼마 되지않아 골아떨어져버렸다.





"똑. 똑. 똑~"


몇 번을 두드렸는지 알수 없었다. 꿈결에 노크 소리를 듣고는 잠꼬대로 열려 있다고 외쳤다.

잠깐이긴 했지만 깊게 잠이 들어버렸었나보다. 어느새 밖은 까맣게 어둠이 내려 앉아있었다. 


“들어오세요!”


낮에 다녀간 아저씨께서 정말 맥주를 들고 찾아오셨다. 

피곤함과 몸살 기운에 잠을 더 청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역시 더 좋았다.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잠이 달아나 버렸다.

내 입에 안 맞는 음식이 있을까마는 아저씨가 가져오신 맥주와 안주 모두 맛있었다.

그 동안 중국의 것이라고 하면 짝퉁, 싸구려, 불량식품 같은 이미지들로만 연상이 되었는데,

적어도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맥주와 안주 만큼은 그 맛이 훌륭했다.


아저씨는 중국음식 칭찬으로 정말 입이 마를 것만 같았다.

“한국 음식하고 비교가 안 되게 중국 음식들이 맛있다까요. 중국 여행하면서 지역별로 다른 음식들 한 번씩 다 먹어봐요.

한국 음식 생각도 안 날 거예요!!”

그리고는 신이 난 듯 몇 가지 안주의 맛을 더 보여주시겠다며 또 어딘가를 갔다 오셨다.

두 손에는 안주거리를 한 움큼 쥔 채였다. 독특하게 감칠 맛이 나는 안주들이었다.

아저씨와 맥주를 마시며 중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밤이 늦어 이야기를 끝내야 할때쯤, 아저씨께서는 메모지에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하나 남겨주셨다.

계속 일을 해야 하기때문에 아저씨께서 집에 있을수는 없겠지만 아저씨 만난 이야기를 하면 언제든지 환영해 줄 거라고 하셨다.

이야기는 즐거웠고, 시간은 빨리 흘렀다.

맥주 몇 병을 냉장고에 더 채워 놓으신 아저씨는 무료하면 얼마든 꺼내 마시라며 일러주시고는 방으로 돌아가셨다.







중국.


가슴 설레는 넓은 대륙의 전설을 간직 한 곳.

그리고 갖은 흉한 소문으로 여행자들에게 두려움 주는 곳.

그 곳으로 향하고 있다.


그 곳에 서 있지 않았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가슴 벅찬 그 기억을 기다리며...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2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