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바늘이 10을 가르킨다. 나도 10의 행동을 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배워 습득한 것이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있다. 인간을 위한 시계바늘의 숫자는 우리의 삶을 통제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아날로그의 숫자에 의해 또는 디지털의 전기 신호화된 숫자에 의해 우리는 항상 같은 하루로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이제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이며 없어서는 않되는 내 삶의 나침반같은 존재이다. 그것이 없어지는 순간, 난 방향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날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일탈을 더욱 갈구한다. 우리의 생활은 그와 반대로 점점 멀어져 간다. 그리고 결코 깨닫지 못한다. 왜 일탈이 그리 어려운지. 아니 알면서도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든것인지도...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공간을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 사회는 변화한다. 그의 말과 공감이 가는 말이 또 생기지 않을까? "우리는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리고 네트워크는 다시 우리를 만든다." 이제 온라인이 없는 세상은 감히 상상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우리에게 "자연친화적"이란 과연 성립 가능한 용어인가? 아니! 그것은 단지 인간을위한 변명일 뿐. 인류의 이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속에서 우리는 건축을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비단 건축뿐만이 아니라.... 과연 우리주위에 "자연친화적"이란 존재하는가? 그래서 힘차게 발을 내딛을뿐이다!
Thema 1 : 수치, 숫자, 수에 대해서... #1 그것은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제는 그 수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무시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현대인은 숫자를 향한 무비핀적 신봉자가 되어있으며, 이것은 과학이라는 포장지로 둘러쌓인 숫자에 의해 그 힘이 더 강화되었다.....-
기억은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시 나는 기억을 쫒는다. 기억 자체를 쫒음이 아니라, 기억이 될 그 무언가를 쫒는다. 아이러니다. 그것은 지배받기 위해 지배하는 관계이다. 세상속에 이같이 아이러니 하게 돌아가는 것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조차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아인슈타인_상대성이론을 읽다...] 어디, 어느곳이든 대응하는 공간이 존재한다. 작용과 반작용같이 말이다. 미는힘에는 반대로 미는 힘이 존재하는것처럼... 그렇다면 어딘가에 중력에 대응하는 반중력현상을 이끄는 곳도 존재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가 사는 공간 이곳은 공간의 통제가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시간의 통제는 불가능하다. 시간은 단지 통제없이 흐르기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3차원 공간이다. 그렇다면 어느 차원의 공간에서는 공간의 통제는 불가능 하지만 시간의 통제가 가능한 곳이 존재하지 않을까? 3차원을 넘어선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