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화. 50도의 선물

2014. 2. 11. 15:13지구별1박2일/🚴🏻‍♂️ 세계일주이야기


“꿀꺽!”


어둠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폭포 떨어지는 소리 마냥 크게 울려 뇌 속을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3단봉을 웅켜잡은 손에는 흥건하게 식은 땀이 베어 있었다.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하얗다.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등 뒤 허리춤에 끼워 놓은 호신용 3단봉을 다시 한번 꽉 웅켜잡었다.

최후의 사태에는 언제든 3단봉을 펼쳐 들고 괴한을 내리 찍고 한판 붙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것 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는 아쉽게도 그것밖에 없었다.


이제 헤드라이트는 몇 걸음걸이 앞까지 다가와 멈추어섰다.

헤드라이트 때문에 자세히 식별하기가 어려웠지만, 한 사람이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적어도 한 명이라는 건 다행이었다. 


‘1:1 이라면 해 볼 만하다!’ 


호신봉을 꺼내 들려는 찰나!





PART 1. 50도의 선물


나보다 조금 커 보이는 키. 깡 마른 왜소한 체구. 짧게 자른 스포츠형 머리.

나이는 이제 20대 초반 쯤...


어둠과 시야가 적응되어 가기 시작하면서 앞의 검은 형체도 조금씩 분별이 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난 두근대는 가슴을 짖 누르고 침착해 지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다.

지금의 순간이 영화로 보고 있는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분명히 현실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해피엔딩으로 이끌어야 하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제길... 다가온다...’


순간, 청년의 손이 나를 향해 불쑥 튀어나왔다!


“으아악!” 


-_-;

청년도 놀란 듯 휘둥그래진 놀란 눈으로 한동안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민 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얼마나 많은 흉한 소문만 듣고 왔던가!

그 때문인지 나의 뇌는 순간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방향으로만 작동을 했던 것이다.

지레 겁을 먹은 채, 이성적으로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졌던 것이리라.

도움을 주려는 접근이라거나, 호기심의 접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털끝 만치도 못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까지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한 손으로는 훔쳐냈지만 다른 한 손은 여전히 3단봉을 꽉 웅켜쥔 채였다.

다가온 청년에게 적의는 없는 듯 보였다.

더군다나 환하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청년의 모습이 식별 될 수 있을 정도로 어둠에 적응이 되었을 때는 온 몸이 사르르 녹는 듯 긴장이 풀리기까지 했다.

그제서야 비로서 안심을 하고 웅켜쥔 3단봉을 슬며시 놓았다.

혹시라도 3단봉을 휘두리기라도 했다면 너무 낮 부끄러운 행동이 되었을 터였다.


가까이서 본 청년의 얼굴은 처음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 보였고, 착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의 얼굴이 어디 따로 있겠냐마는,

적어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청년의 얼굴은 그리 험악한 일을 할 만한 청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환하게 웃음 지으며 다가서는 청년의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경직되었던 근육이 녹아내리는 같았고, 갑자기 피로감까지 몰려왔다.

반면, 청년에 대한 호감도는 급상승하고 있던 터였다.


“#$%^&*)+&”

“난 한국 사람인데요. 음. 캔유 스픽 잉글리시?”

“……”


나도 잘 못하는 영어를 물고 늘어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서로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말하는 분위기와 몸짓으로 상황을 대충 전달하고,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전거를 길 바닥에 눕혀 놓고 외진 곳에서 낑낑대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던 청년은 지나가던 길을 돌아서 온 것이라고 했다.


운이 정말 좋았다.

도움을 주기 위해 낮선 사람에게 이렇게 다가서 준 것도 행운이었고, 그가 착한 청년이었다는 것도 큰 행운이었다. 우리는 서툴지만 간단한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표현하고 이해했다.


우선 자전거의 고장 부위를 본 청년은, 자신의 집에서 하루 자고 내일 자전거를 고치기를 권유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난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만난 듯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처음보는 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까지 하겠다니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진심어린 청년의 행동에 경계하던 마음은 금세 사라져버려, 온데간데 없고 긴장했던 만큼 그 고마움은 두 배나 더한 듯했다.




달빛이 비추는 어둠속에서 자전거를 끌며 청년의 집을 향해 같이 걸었다.

어렴풋이 눈 안으로 들어온 동네의 풍경은 영락없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오른쪽으로는 푸른 싹인지 벼를 베고 남은 풀무더기인지 모를 풀들이 올라와 있는 듯한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좌측으로는 시멘트 벽돌로 쌓여진 낮은 담장에 종이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귀뚜라미 소리에 이내 작은 풀벌레 소리도 뒤섞여 들려왔다.

차가운 봄바람의 처량한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그런 자연의 소리가 뒤섞여 음악의 향연처럼 느껴졌을 땐, 엉뚱하게도 토토로가 옆에서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긴장감이 모두 풀려 실 나간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간간이 서로 배시시 웃는 것 말고는 약간 서먹서먹한 발걸음이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낯설음이란 것이 이런 것이었다.


‘뭐 대화가 통해도 서먹하고, 오히려 더 삭막한 듯한 세상에서도 살아왔잖은가!’


15분 정도를 걸어서 청년의 집에 도착했다.

청년의 어머니께서 환한 웃음과 함께 파란색의 철제 대문을 열어 반겨주셨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님까지도 나오시고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이미 내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라도 계신 듯, 자연스러운 마중이었다.


어서 손을 씻고 저녁식사를 하자며 화장실과 식당을 차례로 안내 해주셨다.

그렇잖아도 긴장을 푼 이후부터는 허기가 느껴지고 있던 터였다.



나무로 된 4인용 테이블.

바닥은 아이보리색의 큼지막한 타일로 마감이 되어 있는 거실과 주방.


모든 공간은 신발을 신고 드나드는 입식형 주택이었다.

큼직큼직한 공간은 채워진 것이 많지 않아 허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치이익~!!”






손을 씻고 식당으로 들어서니, 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에서 진동했다.

귀빈이라도 맞으시는 듯, 어머님은 주방에서 계속 요리를 하고, 나르기에 바쁘셨다.

테이블이 음식으로 가득 찰 동안 아저씨는 호쾌하게 웃으시면서 중국어로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지만,

난 쑥스러운 아이마냥, 머리를 긁적이며 무슨 이야기인지 눈치를 채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그런 것쯤 개의치 않으신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시더니 호탕한 웃음과 함께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잔을 가득 채워 주셨다.

아들은 술을 마실 줄도 모른다면서 술 친구를 맞은 것이 마냥 즐거운 것처럼, 온 집이 떠나갈 듯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두 개의 술 잔이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여러번 하다보니 분위기가 자연스레 화기애애해졌다.

한 잔만 하겠다던 다짐과는 달리 맛있는 음식과, 유쾌한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아버님이 주시는 대로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게 되었다. 어느새 몸에는 열이 나고 얼굴엔 홍조까지 띄우고 있었다.


50도에 가까운 중국식 곡주임에도 불구하고, 1L짜리 백주[빠이쭈어]는 어느새 2병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목이 타 들어가는 듯이 독한 맛을 뿜어내기도 했지만, 혀에서 맴도던 과일향이 목구멍을 적시며 타고 넘어들어올 때면

“크아~” 하는 탄성과 함께 또 다시 한 잔을 찾게 만드는 술이었다.

아버님께서 내어주신 [빠이쭈어(백주)]라는 이 술은 집에서 직접 담근 향기 좋은 곡주였다.

한국에서도 좋아했던 이과도주의 맛과도 비슷했지만 그보다는 훨씬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맛있는 독한 술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홍조를 띈지는 이미 오래 되어버렸다.

불편하기는 커녕 너무나 유쾌하고 즐거운 자리였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청년의 가족 사이에 녹아들어 어색함 따위는 모두 사라져버린 듯 했다.

꼭 오랜만에 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듯 시끄럽게 떠들며, 호탕하게 웃음이 오가는 자리에서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입맛을 다시 한 번 ‘쩝쩝’ 다시게 했던 술과 함께 상에 차려진 향기로운 음식들 모두 비워져갔다.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하고 의아하기도 했지만,
흥겨운 기분에 그런 생각 따위는 금새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살랑이는 커튼 사이 틈을 비좁게 뚫고 들어온 눈부신 태양빛이 눈꺼풀을 살짝 살짝 간지른다.

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을 땐 이 낮선 장소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반쯤 감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여기저기 훑어보고 있었다.


하얀색의 페인트로 칠이 되어 있는 넓은 방에는 침대 하나,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 한 대가 깔끔하게 놓여 있었고 나의 지갑과 시계, 노트북, PDA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이쿠 머리야~!!!’


그제서야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젯밤 내가 어떻게 이 방까지 올라왔지?’


어젯밤의 기억은 아버님이 흥건하게 술이 올라 잠을 청하러 가겠다며 자리를 일어선 그 순간까지였다.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기억도 잠깐 들었고, 서로 대화가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웃고 떠들었던 순간 순간의 기억이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섰다.


혹시나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에 실수라도 저지를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끼익~”


어제의 그 청년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억이 끊기던 그 순간까지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던 바로 그 청년이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떠 먹는 흉내를 낸다.


“아~! 아침밥?!”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속은 깔끔한 느낌이었다. 머리가 살짝 지끈거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 소주를 이렇게 마셨으면 1박2일동안은 미친듯이 방을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PART 2. 이방인을 대하는 풍경


아침은 죽이었다.

아니 죽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따뜻한 물에 밥을 말아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죽보다 조금 덜 걸쭉한 느낌이 나는 그런 아침 죽이었다.

큰 그릇에 가득 담아 주신 죽과 함께 기름에 튀긴 길쭉한 빵을 게걸스럼게 먹기 시작했다.


‘다른 문화는 배워가면 된다!’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던 죽의 맛은 반전이었다.

구수한 숭늉밥을 먹는 듯한 느낌이랄까?

3그릇이나 해치워버렸다.

고소한 맛이 좋았던 길죽한 모양의 튀겨진 빵도 두어 개 집어서 먹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호쾌하게 웃어주시는 아버님은 역시나 살갑게 대해주셨다.

어디로 여행을 할 것인지, 얼마나 여행을 하는 것인지 등 나의 여행을 물어보실 때면 몸 짓 발짓을 섞어가며 설명을 해 드렸고, 그럴때마다 아버님은 엄지까지 치켜세워 주시면서 대단하다는 듯한 표현을 해주셨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서  떠나기 전에 잠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이제 하루밖에 안 됐어요. ^^”


이제야 부모님도 실감하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체온이 채 가시지 않은 방문을 열어 보셨던 것일까?

어머니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나까지 목을 타고 넘어오는 뜨거운 무언가 느껴졌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있을 땐 알지 못했던 것들이 점점 더 많이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돌아가지 않을 바에야 잘 지내고 있다고 큰소리라도 떵떵 치는 것이 부모님을 더 안심케 할 수 있는 방법 같아서 약간 허세를 부렸다.

그리고 하하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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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분들 덕분에 중국의 인심도, 배도 든든히 채웠고,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일찍 일하러 나가셔야 했던 청년의 부모님께서는 안전하게 여행하라는 당부와 함께 어깨를 툭툭 쳐주며 응원해주셨다.


“아냐 괜찮아! 안 따라 나서도 돼!!”

이 청년은 내 자전거를 고치는 것 까지 도와주고 학교를 가겠다는 것이었다.

한사코 말렸지만, 내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가진 듯, 재촉해서 자전거를 끌고 나오라고 했다.


‘고맙긴 하지만... 미안하잖아!!’


자전거를 끌고 도착을 한 곳은 한눈에 딱 보아도 알 수 있을 듯 한 시골 마을의 조그마한 농기계 수리소였다

정공법만큼 임기응변의 수를 좋아하는 난, 그것이 가능한 방법이라면 굳이 FM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갈 수 없는 길을 보고 절망하지 말고. 나머지는 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자!]라는 식이랄까?!





나사산이 다 깎여져 나가버리는 바람에 안장 고정클립을 고칠 수는 없었지만,

농기계에 쓰이는 큼지막한 나사와 볼트로 땜질을 하는 것으로 안장을 고정 할 수는 있게 되었다.

볼품은 없어보였지만, 그 정도면 훌륭했다.


얼마를 드려야 하는지 물어 보려던 그때에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청년의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찾아 오셨다.

고마운 마음에 다시 인사를 드리고 떠나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자전거가 잘 수리되었는지 이것저것 보시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들고 자전거를 수리해 주신 할아버지께 건네려 하고 있었다.


눈치 100단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그게 어떠한 상황인지는 알수 있었다.





아저씨께서 돈을 건네려는 손을 난 한사코 막아서며 내가 드리겠다고 했고,

아저씨는 손님은 가만 있으라며 자기가 이런 것쯤은 계산해야 한다는 식이었고,

자전거를 고쳐준 할아버지는 이런것 쯤에 무슨 돈을 내냐며 손을 휘져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참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릴적 뛰놀던 고향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보여주시던 그 순박한 시골인심 같이 느껴졌다.






어제 처음 본 이방인을 대하는 분들의 마음이 대략 이러했다.

결국은 청년의 아버님께서 반강제로 던저주듯 할아버지의 주머니에 돈을 꽂아주고는

중국에서 여행 잘하라는 듯한 말씀과 함께 다시 일을 하러 가셨고, 난 뒤돌아서는 청년의 아버님께 몇 번이나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단지 스쳐가는 이방인에 지나지 않은 내게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준 고마운 분들을 가슴 깊이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렇하겠지만, 미래란 건 참 알지 못할 일들로 가득한 곳이다.

어젯밤 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 채 무서워 했고,

오늘 난 가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하다.


어쩌면 세상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곳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섭고 두렵기만 한 곳도 아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속단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넓지 않은가.


어쩌면 나의 이 여행은 평생에 다시 찾아 올 수 없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더 경험하고, 더 배우고, 더 느끼게 될 것 같다.


철학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또 다른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일 뿐.

행복의 또다른 기준을 찾아가는 것일 뿐.




여행기 5화까지.

빠이.짜이찌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