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화 캠핑미션

2014. 3. 1. 06:16지구별1박2일/🚴🏻‍♂️ 세계일주이야기



PART 1. ‘지딴차오판’


왕복 6차선의 넓은 도로와 그 옆으로 또 하나의 널찍한 도로.

중국은 차로보다 더 넓음직스러운 도로가 차도와 인도 사이에 놓여있다.

바로 자전거 도로이자, 오토바이용 도로이다.

어릴적 티비 화면 속에서 보았던 중국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자전거로 북적이는 도로가 그 대표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자전거로 북적거리는 중국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많은 자전거들이 이미 오토바이로 대처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옛 중국의 자전거 부흥기를 보여주는 듯 널직한 자전거 도로만이 그 증거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 같은 시골에서는

을씨년스러워보일지도 모르는 이런 넓직한 자전거 도로가 내겐 너무고마울 따름이었다.


시계보다 먼저 점심시간을 알려준 건 다름 아닌 배꼽시계였다.

“꼬르륵”하고 알람이 울렸다.


이제부터는 몸으로 부딪히는 모든 현실에 대해 걱정을 해야 했다.


‘밥을 어디서 먹지?’

‘주문은 어떻게 해야 하나?’

‘뭘 먹어야 하는 거야?’

‘가격은?’

‘대화는 어떻게 하지?’ 


시원하게 뚫린 도로 위를 달리던 상쾌한 기분과는 달리, 이제부터는 정말 타국에서 혼자만 여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이런저런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에서 엉퀴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해 온 중국어라고는 고작 니하오, 쉐쉐, 짜이찌엔. 

이것뿐이었다.

다행이 자전거 가방 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미리 챙겨놓은 작은 중국어 회화책 하나가 쳐박혀 있을테지만, 통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제야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언어는 여행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난 그 중요한 부분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여행을 시작하고 말았다.


언어를 알아야 그 곳을 알 수 있고, 사람을 알수 있으며, 비로소 문화를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 나의 여행처럼 로컬(지역민)과 많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여행에서는 언어의 비중이 너무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어쩌면 반쪽 여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누군가에게 꼭 하나의 당부만을 해주어야 한다면, 무조건 난 언어를 꼽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여행에서의 찾을 수 있는 위로라면, ‘떠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것 정도였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난 얼마나 많은 일을 시도조차 못해 보았던가! 

가끔은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열정만을 가지고 뛰어들 수 있는 결단 또는 행동이 더 중요할 때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나에겐 그런 순간일 것이다. 앙꼬없는 찐빵같은 여행 같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느끼는 여행도 나쁘지만은 않을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난 대책 없는 그 자신감 하나라도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밥, 밥 없어요?"


벌써 밥 먹는 시늉만 여러번 내며 밥, 밥, 밥을 연거푸 토해 내고 있었지만 주인장 아저씨는 계속해서 고개를 절래 절래 저을뿐이었다. 

시멘트 벽에 떡하니 붙어 있던 빛바랜 누런 종이에 쓰여진 메뉴판은 나에게는 소용없는 그냥 한 폭의 동양화일 뿐이었다.


“아저씨. 나 배고파~아요~”


몸짓 발짓을 섞어가며 물어, 물어서 겨우 재래시장처럼 보이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길거리 분식집을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난 꼭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냥 기뻐 했었다. 

하지만 주문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리는 없었다. 밥 하나 시키느라 진땀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답답하셨던지, 아저씨는 주방을 보여주시겠다며 날 이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식자재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래요. 바로 그거요!!”


아저씨의 손가락이 계란에 멈추었을 때 난 외쳤고, 아저씨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을 때서야 비로소 난 쾌재를 불렀다.

사실 꼭 계란 볶음밥을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배를 불려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주문을 한 것이 무에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인 마냥 뿌듯해졌다. 

언어가 안되면 이런식으로라도, 몸으로 부딪히혀가며 천천히 하나씩 배워가면 될 일이다.


*계란볶음밥 : [지단차오판] 또는 [딴차오판]이라 한다.

하지만 발음을 안다고 해도 중국의 성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럴 때는 글을 보여주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Tip. 중국의 성조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언어에는 성조가 존재합니다. 성조란 발음의 고저와 장단을 이야기 합니다.


◈ 중국어는 4개(+1:경성)개의 성조를 가지고 있으며 성조의 차이에 따라 같은 발음이라도 다른 뜻을 가집니다.

1성은 높고 평평하면서 길게 이어지는 소리, 

2성은 조금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급격하게 올라가는 소리, 

3성은 낮은 음에서 시작해 더 낮아졌다가 살짝 올라가는 소리, 

4성은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빠르게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길가에는 어느새 구경꾼까지 생겨났다.  

음식점을 알려주러 왔던 사람들로 시작이 된 군중은 길을 지나는 사람들까지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식당을 사이에 두고 난 길 반대편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괴물처럼 생긴 자전거를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한 명의 이방인을 구경하려는 구경꾼들이 점점 몰려들면서 진을 칠 판었다.

더군다나 인파가 늘어나니 뭔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고 뒤쪽을 기웃, 기웃하며 이쪽 식당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까지 늘어났고 인파는 점점 늘어나는 듯했다.

구경꾼들은 진짜 뭔가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긴 것 마냥 서로 웅성대기도 하고 내 쪽을 가리키고는 크게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은 더 시장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왁자지껄.’


제대로 시끄러워진 것이다.

조금은 낯설고 당황스러운 분위기에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내 생에 이렇게 많은 인파에 둘러쌓여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인분은 족히 될 듯이 수북하게 쌓인 볶음밥이 나왔다.


‘...’

‘...’


밥을 앞에 두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반찬 안 주나?’


눈알을 오른쪽으로 굴렸다, 왼쪽으로 굴렸다를 반복했다.

열려진 식당의 문을 통해 길 너머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내 동작 하나하나를 주목하고 있는 듯해서 행동이 좀 조심스러워졌다. 

밥을 시켜 놓고는 가만히 있으니 또 무슨 잔치라도 난 것마냥 시끄럽게 떠들고 웃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렇다고 반찬도 나오지도 않았는데 허겁지겁 밥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좀 체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숟가락 조차 들지 않고 눈만 말똥거리며 가만히 않아 있었다.


Tip. 중국의 음식점에서는 시키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야채 볶음 반찬, 고기 볶음 같은 것을 주문 하면 밥이 따라 나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주방에서 이제 막 나온 아저씨도 앞 테이블에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 내가 무엇을 하나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

“…”


그렇게 주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에야 머리회전이 되었다. 더 이상 나올게 없는 것이다. 

숟가락을 들자 길 반대편에서는 탄성소리와 함께 응원을 하는 듯한 소리 마저 들려왔다.


-.-;;


그렇게 열렬한 응원 속에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제대로 분간 못할 정도로 빨리 헤치워버렸다. 그리고는 군중에 둘러쌓여 있다는 부끄러움에 물도 마시지 않고 빨리 자리 뜨기 위해 돈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음식 값을 지불하려는 나의 손을 식당 주인 아저씨께서 가로막아 섰다. 무언가를 말씀하시더니 돈은 넣어두라고 하셨다.


‘???’


몇 번이나 더 돈을 건네 드리려고 했지만 아저씨는 극구 안 받겠다는 식이었다. 대신 언제든 다시 오게 되면 전화나 하라는 듯이 명함 한 장을 건네주셨다. 아저씨께서 자전거를 가르키며 나의 여행에 관심을 보이시기에 세계지도를 보여주며 나의 여행을 잠깐 설명 드리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는데, 마치 친구를 대접한 것 마냥 한사코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머릿속에 드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내가 외국인이 호의를 베풀고 싶어서 그러시는 건가?’하는 추측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이걸 중국의 일반적인 친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고마웠다. 사진을 한 두 장 같이 찍고는 아저씨께 두 번, 세 번 고맙움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는 다시 남쪽을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Part 2. 캠핑미션.


시장터를 벗어나자 다시금 한적한 길이 나타났다.

분명 유령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이 종종 들 정도로 거리가 너무나 한적했다!

“따그닥~ 따그닥~”


박자를 맞춰 달려가는 듯,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짐을 잔뜩 실은 마차 위로 할아버지 한 분이 담배 한대를 입에 물은 채, “덜거덩, 덜그덩” 거리는 흔들림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마차를 이끄는 말의 경쾌한 발굽 소리는 한적한 기운의 공기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느긋함이 가늑한 웃음이 베어있었다.







몇 시간쯤을 달렸을까? 한적했던 도로는 이제 온데간데없고 조금씩 도로가 붐비기 시작한다. 차들도 많아졌고 사람도 많아졌다. 

가끔은 역러쉬를 해오는 차들과 오토바이들까지도 생겼다. 그리고 뿌연 먼지와 함게 공기 속은 온통 ‘빵~빵~’대는 경적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전통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대문에 멋들어진 필체의 한자가 적힌 현판이 많이 보였다.

이미 대부분이 서양식 건축에 자리를 내주었을 지 모르나 적어도 집의 얼굴격인 정문만큼은 그에게 자리를 내 줄 수 없다는 듯 자리한 기와 대문이 인상적이다.

이제는 가끔씩 길을 달려 지나가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는 뭐라고 외쳐 주기도 하시고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살짝 얼굴에 미소가 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위싼(Yishan)을 지나서 양지(YangJi)라는 곳을 지나치는 동안 다시금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밥을 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아직 여행에 적응이 되지 않아 식당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 일이었고, 식당을 찾는다 한들, 또 한판의 실랑이를 벌여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

오늘 저녁은 포기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모든 것이 낮선 이 상황에서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첫날의 안전한 캠핑이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후배가 챙겨준 초코바와 아침에 중국친구의 집을 떠나올 때 어머니께서 싸주신 과일들이 있어 저녁으로 때우기에 충분했다.






어느새 첫날의 라이딩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얼 야생 여행을 테마 했기 때문에  잠자리는 주로 캠핑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온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썰렁한 바람소리가 휘날리는 드넓은 논밭은 끝이 날 생각을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볼수 있는 위험이 노출된 황량한 논바닥 위에 캠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작은 모든것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쳇! 마을은 커녕 텐트자리 하나 칠 만한 작은 수풀조차 보이지 않네!’


해는 점점 낮아지고 하늘도 점점 어두워져 갔다.

도로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듯 보이는 듯한 곳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는 있었지만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길 위에는 가로등 하나 조차 보이지 않았다.


밤을 뒤덮는 어둠이 몰려올 수록 인적이 더 드물어졌고, 차도 더욱 드물어졌다. 

어제는 어떻게 운이 좋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었지만, 오늘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어두워질수록 긴장감은 점점 더해졌다.


그리고 어느새 하늘과 땅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어둠이 모든 걸 삼켜버렸다.

첫날부터 라이트를 꺼내야 했다.자전거 뒤쪽의 안전등도 켰다.


이제는 너무 다급해져서 집처럼 보이는 형체가 나타나기만 하면 무조건 달려가서 재워달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어두컴컴한 허허벌판일 뿐 안전한 장소라고 할 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허기도 깊어지고 두려움에 점점 이 놈의 여행을 왜 했나 하는 푸념까지 나오려고 할 무렵.


‘앗 빛이다!’


간절했다. 이 작은 불 빛이 내겐 실낮같은 희망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하루 캠핑을 허락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 심정은 긴박했다.

언어가 소통되고 안 되고 따위를 걱정하는 건 이미 안드로메다로 집어 던져 버린 채 우선은 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쿵쿵쿵. 니하오~?”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은 경비소처럼 보이는 작은 콘크리트 박스 건물이었다.

한 쪽 벽면이 방범용 철장으로 막힌 유리 창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불은 켜져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릴 사람이 평소에 없을 만한 외진 곳이었다. 낮은 철제식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는 곳 안쪽 너머는 어둠에 덮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 벽면에 이름이 새겨진 나무 문패로 보아 무슨 공장 같은 곳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두드렸다.

그리고 좀 더 전열을 가다듬고 목소리도 크게 내었다.


“니하오~!!!”


그제야 인기척이 들려왔다.


“!@#$%^&*?”


무언가를 묻는 듯 한 말투와 함께 쳐다보는 모습이 냉랭했다. 철장 문을 거두지 않은 채 철제식 게이트 너머에서 아저씨 한 분이 모습을 보였다. 웬 이상한 놈이 왔냐는 듯 한 심퉁한 표정을 함께 한 채였다.

의사소통이 될 수 없었기에 일단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로 시작을 해서 손짓, 발짓을 동원하며 안쪽에 캠핑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아니 사실 그건 말이 좋아서 물어보는 것이지, 애원에 가까운 식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배수의 진을 친 것처럼 간곡하게 부탁을 하며, 30분여의 시간 동안 언어 실랑이가 오고갔다.

전화 연락을 받은 다른 관리 직원까지 나와서는 수상한 듯 한 눈빛으로 위 아래로 훑어보며 이것저것 꼼꼼하게 살핀 후에야 바리케이트 바깥쪽 텐트를 칠 수 있다는 허락 받을 수 있었다.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바리케이트 안쪽 너머로 캠핑을 하고는 싶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아도 이렇게 야심한 시간에 낮선 사람을 들이는 건 당연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건물 앞에 텐트를 칠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그 정도로 인적이 드문 황량한 곳이기도 했다.



건물 앞에 조그마한 공터가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저씨 두분이 내가 텐트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시길래, 한국에서 가져 온 담배 담배 한 개씩을 전해드렸다. 난 나쁜놈이 아니라는 걸 표현하려는 듯, 친근감을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조금전 까지는 자리를 내어 주면서도 냉랭했던 분들이 담배 한 대를 피며 내가 텐트 치는 모습을 구경하시더니, 웃음까지 보이며 환대를 하는 것이었다. 


‘역시 웃는 얼굴엔 침을 못 뱉는 것인가?’


 웃음이라는 만국 공통어가 효력을 보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담배의 힘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담배를 서로 건넨다는 건 악수 이상의 의미 같은 것라고 여행의 훗날 만나게 될 중국 친구들이 알려 주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게 첫날의 캠핑 미션은 나름 성공이었다.



짧은 듯, 긴 하루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벌써 부터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부딪혀 나가고 그 속에서 적응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 뿌듯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하나씩 만들어 가는 이 여정은 언젠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될 것만 같다.





+

글쓰기 초짜라 글도 잘 못 쓰고 퇴고도 오래 걸리는 데다, 생계도 이어 가려다 보니 업데이트 좀 느립니다.

좀 더 속력을 내 볼께요.

오타나 부자연스러운 티들이 보이면 마구 지적해주세요.


에브리데이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