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여행의 시작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것이다.

물건 하나를 찾으려면, 뒤집어엎고, 옆으로 차고, 던지기를 계속 해야 했다.

방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01화. 여행의 시작.


PART 1. 여행의 시작 



“잠은 좀 잤니?”


어머니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잠을 설치신 것 같았다.

어떤 부모가 이런 날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아들이 집 떠나 몇 년간 세상을 방황하겠다며 떠난다는데 말이다.

하지만 난 지금 한가하게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아, 온 준비물이 방구석을 나뒹굴고 있었다.

머릿속이 허옇게 흩뿌려진 안개처럼 몽롱해졌다.

예상했던 출발 시각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정리를 끝내지 못했으니 그럴만했다.

 

문제는 짐의 양이었다.

자전거에 싣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양이었다.

모두 다 가지고 갔다가는 채 1km도 가지 못하고 로시난테*(내 자전거 애칭)가 폭삭 주저앉을 판이었다.

결국은 밤새 꼭 필요한 물품만 다시 재정리해야 했지만, 제대로 정리도 마치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설마 저녁 7시는 아니겠지’

대학생이었던 시절, 해 질 녘에 일어나서는 강의 시간 늦었다고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뛰쳐 나가던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아침이었다. 약간의 공항상태었던 게 확실했다.


그쯤 해서 아침을 준비하는 주방의 분주함이 다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언제 다시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주 일상적인 아침의 한 장면에 뜨거운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래 준비는 다 됐어?, 정말 갈 거야?, 지금 생각을 바꿔도 돼!, 아무도 비웃지 않아!”
어머님의 마지막 작별인사는 당신의 마지막 실 낮 같은 희망을 담은 듯 들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한국친구들이 정말 많으니까. 너무 걱정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가슴에서 뭔가 자꾸 울컥하고 치밀고 올라왔다.
가족과 헤어진다는 게 피부로 와 닿다 보니 일상의 모든 것들이 그다지 일상답지 않았다.
일상의 아침. 그러나 다른 감성.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빈도 낮은 물건은 집에 두고 나머지 짐들을 패니어에 대충 때려 넣었다.

나머지는 배 위에서 짐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각종 신용카드와 계좌이체용 보안카드 등을 보관해 놓은 작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다.

짐을 대충 때려 넣다 싶이 하다 보니 각각의 짐들이 어느 가방에 들어갔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급한데 짜증이 밀려들었다.

다행이 어머니께서 책장 위 어딘가 놓여있던 지갑을 찾으셨다. 그리고 언제나 늘 그렇듯 잔소리도 뒤따랐다.


“그래서 세계여행은 어떻게 하려고 하냐? 너처럼 덜렁대면 1달도 못 가서 다 잃어버리고 돌아오겠다! 간수 좀 잘해. 덜렁대지 말고, ……"

다른 때 같으면 잔소리로 들릴 법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래 이젠 혼자다. 모든 걸 혼자서 다 해결해야 한다.'


대충 준비를 마치고 친구와 동생의 배웅으로 인천 국제 여객 터미널로 향할 준비를 했다.


“형 근데 저 많은 걸 자전거에 실을 수는 있는 거야?”

동생이 물었다.

“당연할걸?! ㅎㅎ;;”


자신 있게 대답은 했지만 사실 나도 자전거의 좌우 무게 균형을 대략 잡아 봤을 뿐이지 잘 굴러갈지는 모를 일이었다.


앞바퀴에 두 개의 가방

뒷바퀴에 두 개의 가방

핸들바에 가방 한 개.

뒤 짐받이에 가방 두 개.

그렇게 정리된 자전거는 그무게가 70~80kg은 족히 되어 보였다.

내겐 생전 처음 만나는 괴물급의 자전거인 셈이었다.


“걱정 마세요 잘 다녀올게요!”

이제 정말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씩씩한 작별인사 뒤로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승용차 두 대로 나누어 인천 국제 여객 터미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대의 차에는 자전거와 짐을 모두 실었다. 동생이 운전했다.

그리고 배웅을 해주기로 한 친구의 차에 난 올라탔다.


“야 인마 뭘 그렇게 쫄아 있냐? 안 서둘러도 돼! 아직 출발까지는 시간 충분해!”

운전하는 친구가 픽픽 웃어댔다.


사실 출발 시간에 늦어서 오는 긴장감이라기보다는 여행의 시작을 실감하면서 오는 흥분과 걱정, 그리고 긴장감에 가까웠다. 예상보다 30분 일찍 도착을 함으로써 약간의 안도감은 찾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분주했다.


우선 밥을 먹자는 밥탱이들을 잠시 달래 놓고는 우선 출국 절차를 한 번 확인해야 했다.

매표소 입구 쪽으로 가서 예매한 티켓를 보여주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글쎄요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습니다. 배 안에 들어가셔서 중국 입국신고서 하나만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근데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혹시나 문제가 될 만한 본드나 공구 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가는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확인을 하기 위해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죄송합니다. 이 물건은 안 되겠네요. 통과 시킬 수가 없습니다.”

자전거 타이어 *펑크 수리용 본드, 다용도 공구, F킬라, 부탄가스 등 몇몇 물품은 통과가 안 된다는 것이다.

(*펑크: Puncture(펑크셔)가 정확한 용어입니다. [Flat tire]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다용도 공구와 수리 공구들은 절대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절대 안 됩니다!”

“자전거 여행자인데, 이 물품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 입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부탁이었지만 강요에 가까운 부탁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직원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을 듯한 나의 기세에 살짝 풀이 죽은 듯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결국은 관계자 두, 세 분이 더 나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자전거 여행자이니 특별히 물품들을 통과시켜주겠다며, 부탄가스를 제외한 모든 물품을 허가해 주었다.

선실 내로 반입은 안되고 수화물로 따로 보관하여, 연운항에 도착하면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다.

(*항공의 경우 기내 수화물과 Checked luggage(수화물)로 분류되는 반면 페리의 경우는 안 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니 미리 문의해 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큰 문제를 해결하고 티케팅도 마친 후에야 밥을 연신 외치던 동생과 친구의 배를 채울 수가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짐이 보관된 자동차로 돌아왔다.

떠날 채비를 하기 위해 자전거에 모든 짐을 싣고 주차장에서 잠깐 시험 운전도 해보았다.

생각과는 다르게 안정감도 있었고, 자전거 여행을 하는데 큰 애로사항은 없을 듯했다. 그런데…


‘아차!!!’ 

스탠드를 깜빡했다.

자전거 무게의 압박 때문에 볼트와 나사도 보강하였고 강력하게 땜질 보강도 한 나름대로 신경을 쓴 아이템 중에 하나를 두고 와버렸다. 어머님이 보셨으면 또 한소리 하셨을 터였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후회해 본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되겠지 뭐. 안 되면 길에 같이 눕자! 로시난테야!’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다녀보는 수밖에….]

마음을 비우자 금세 걱정도 사라졌다. 
















PART 2. 안녕 한국!


“잘 놀다 올게. 너희도 잘 지내라!”

“너나 조심해라 인마! 장기 조심하고. ㅋㅋㅋ”

“+-_-;; 죽고 싶으냐?”


설렘, 걱정, 흥분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 동생 그리고 친구 상민이와의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무사히 다녀오라는 동생과 친구의 말이 계속 귓속을 맴돌았다.


출국 심사대에서 다른 모든 가방이 X-ray검사대를 통과하는 것과는 달리 자전거는 X-ray 검사를 하지 않았다.

눈으로 한 번 검사를 하는 정도였다. 물론 자전거 크기 때문에라도 X-ray 검사대를 통과시킬 수 없을 듯 보였다.

호신용 3단봉의 경우 소지가 불가능 하였기에 *싯 포스트 안에 넣어 두었는데 다행히 X-Ray 검사대 통과시키지 않음으로 별문제 없이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싯 포스트[sit post]: 자전거 안장을 탈부착 시킬 수 있는 자전거 프레임의 센터 컬럼.)

호신용으로 3단봉을 가져가기는 하지만 솔직히 총, 칼 들이대고 덤비면 순수히 응해주는 게 나을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어, 동생이 경호할 때 쓰던 제대로 된 호신봉 하나를 챙겨왔다.


출국대를 나와서 배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버스를 한번 타야 했는데, 이것도 모르고 자전거 짐을 탈착했다, 부착했다 하면서 어리버리 대느라 진땀 꽤 흘렸다.

어찌 됐건 말이 통하지도 않는 중국분들의 도움을 받아 버스에 짐을 올리면서부터 묘하게 중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벌써 언어 울렁증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 사실 난 중국어 회화는커녕 ‘니하오!'를 빼고는 아는 중국 단어 하나도 없이 그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그 역시 어찌 되겠지 싶었다.


버스가 멈춰선 그곳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큰 배에 오르기 위해서는 3, 4층 정도는 될 듯한 높이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짐을 올려야 했다.

밑에서 승무원 몇몇이 있긴 했지만 아무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굴에 철판 깔고 아무에게나 말 잘 붙이는 내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언어 울렁증 때문에 그런지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탄 버스의 승객들을 마지막으로 승선을 마친 배는 철문을 걸어 잠그고 뭍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항구에서 멀어져 간다.

나도 멀어져 간다.

한국.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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